신라말의 김해

작성일
2018-08-28 18:01:46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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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의 김해는 중앙의 통제가 약해지면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지방호족의 근거지가 됩니다. 김인광(金仁匡) 김율희 등은 진례성제군사로서 현재의 김해와 창원의 경계에 있는 진례산성(進禮山城)에 근거를 두고 김해지역을 아우르는 세력이 되었으며, 헌덕왕(憲德王) 14년(822)에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반란군에 항복하여 그 수하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신라 말에서 후삼국시대까지 어느 쪽에 가담하는 지역이 되는가에 따라 건국시기의 고려사회에서의 김해지역의 위상이 결정되게도 되었습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김해소경을 김해부(金海府)로 낮추고 있음을 볼 때 왕건의 후삼국통일에 기여했던 지역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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