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작성일
2018-08-29 10:15:44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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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은 원종11년(1270)에 금주방어사(金州防禦使)로 부임하여 1271년에 삼별초의 난에 호응해 일어났던 밀주(密州, 밀양)의 민란을 판관 엄수안과 협력하여 평정하였고 그 공이 인정되어 1271년에 금주는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습니다. 허유전은 김해 출신으로 원종 말년에 과거(文科)에 급제하여 충렬왕 때 감찰시사(監察侍史)가 되었는데 모함으로 투옥되었다가 사면되었고, 국학사예(國學司藝), 전조시랑(銓曹侍郞), 도첨의참리지밀직사사(都僉議參理知密直司事)를 역임하다 충숙왕 초에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지고 정승에 오릅니다. 충선왕이 원에서 토번(吐藩, 티벳)으로 귀양가자 민지(閔漬) 등과 함께 소환을 청했는데, 81세의 고령이고 부인이 병중이어서 만류하였으나 반년 동안 원에 머물며 귀환운동을 벌였습니다. 송천봉(宋天逢)은 김해 출신으로 과거(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충목왕 때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어 부정한 재상을 탄핵하다가 귀양을 갔고 공민왕 초에 감찰집의(監察執義)가 되어 여러 선비를 천거했으며 우왕 초에는 대사헌(大司憲)에 오릅니다. 감찰과 상소를 통해 나라 바로 잡기에 노력하다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졌고 81세로 돌아갔습니다. 김유(金庾)는 김해 출신으로 공민왕 때 홍건적을 평정하여 개경을 수복시켰고, 원(元)이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는 것에 반대해 덕흥군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최영이 임금에게 대드는 것을 성토하였고, 원에 사신으로 갔을 때 우왕의 출자를 묻는 황제에게 대답치 않은 죄로 지금의 운남성 대리(大里)까지 귀양을 갔었습니다. 원의 꼭두각시 세력가 이인임과 충돌하여 우왕12년(1386)에 투옥되었다가 순천으로 귀양가는 길에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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