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대왕의 교지(敎旨)와 어서각(御書閣)

작성일
2018-08-29 10:22:41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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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 함락 후에 선산에서 김해로 내려온 권탁(權卓)은 무너진 성을 수축해 지키다가 선조대왕이 내린 국문교서를 받들어 적진에 들어가 수비병을 죽이고 일본으로 납치되려던 양민 백 여 명을 구출하였습니다. 권탁이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자, 경종(景宗)때 장례원판결사의 벼슬을 올리고, 고종7년(1870)에 김해부사 허전(許傳)이 기문을 짓고 현충사와 어서각을 세워 국문교서-어서(御書)를 봉안하였습니다. 어서각의 규모가 작고 건물이 낡아 1990년에 임호산 남쪽 기슭의 현 위치에 확장 이전하였다. 국문교서는 1988년에 보물951호로 지정되었고 어서각은 도문화재자료 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김해시의 유일한 보물인 국문교서는 선조26년(1593) 9월에 작성되어 세로75cm 가로48.8cm의 크기로 「만력이십일련구월 일」의 날짜와 「諭書之寶」의 옥새가 지금도 세 곳에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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